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/4강, 결승 (문단 편집) === [[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|아르헨티나]] 2 vs 4 [[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|우루과이]] === || 경기장 ||<-2> [[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]][br][[몬테비데오]] - [[우루과이]] || || 경기일 ||<-2> 1930년 7월 30일 15:30[br](1930년 7월 31일 04:00) || || 주심 ||<-2> LANGENUS Jean (벨기에)[* 월드컵 최초 결승전 주심이다. 대회 4강전 1경기, 조별리그 1조 1경기, 3조 1경기 주심이었다.] || || 국가 || [[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|아르헨티나]][br][[파일:아르헨티나 국기.svg|width=30]] || '''[[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|우루과이]]'''[br][[파일:우루과이 국기.svg|width=30]] || || 점수 || 2 || '''4''' || || 득점 || [[카를로스 페우셀레]] (20')[br][[기예르모 스타빌레]] (37') || 파블로 도라도 (12')[br][[페드로 세아]] (57')[br]빅토리아노 이리아르테 (68')[br][[엑토르 카스트로]] (89') || [youtube(3gELBavbzWQ)] || {{{#666666 '''라인업''' }}} || {{{#666666 '''이름''' }}} || {{{#666666 '''비고''' }}} || {{{#000000 '''라인업''' }}} || {{{#000000 '''이름''' }}} || {{{#000000 '''비고''' }}} || ||<|11> 선발 || 후안 보타소 || GK ||<|11> 선발 || 엔리케 바예스테로스 || GK || || [[페르난도 파테르노스테르]] || || [[에르네스토 마스체로니]] || || || 호세 델라토레 || || [[호세 나사치]] || [[파일:주장 아이콘.svg|width=20]] || || [[루이스 몬티]] || || [[로렌소 페르난데스]] || || || 페드로 수아레스 || || [[알바로 헤스티도]] || || || 후안 에바리스토 || || [[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|호세 안드라데]] || || || [[기예르모 스타빌레]] || [[파일:득점 아이콘.svg|height=20]] || 빅토리아노 이리아르테 || [[파일:득점 아이콘.svg|height=20]] || || [[마누엘 페레이라]] || [[파일:주장 아이콘.svg|width=20]] || [[엑토르 스카로네]] || || || 마리오 에바리스토 || || [[엑토르 카스트로]] || [[파일:득점 아이콘.svg|height=20]] || || [[카를로스 페우셀레]] || [[파일:득점 아이콘.svg|height=20]] || 파블로 도라도 || [[파일:득점 아이콘.svg|height=20]] || || [[프란시스코 바라요]] || || [[페드로 세아]] || [[파일:득점 아이콘.svg|height=20]] || ||<|11> 교체 || [[앙헬 보시오]] || GK ||<|11> 교체 || 미겔 카푸치니 || GK || || [[라몬 무티스]] || || 도밍고 테헤라 || || || 알베르토 치비디니 || || 에밀리오 레코바 || || || 에드문도 피아조 || || 에드문도 피아조 || || || 로돌포 오를란디니 || || 카를로스 리올포 || || || 아돌포 수멜수 || || 콘두엘로 피리스 || || || 나탈리오 페리네티 || || [[산토스 우르디나란]] || || || [[로베르토 체로]] || || [[소일로 살돔비데]] || || || [[아틸리오 데마리아]] || || [[페드로 페트로네]] || || || 알레한드로 스코펠리 || || 후안 안셀모 || || || 카를로스 스파다로 || || 후안 카를로스 칼보 || || ||<-30>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; padding: 5px 10px; background-image: linear-gradient(to right, #FFFFFF 20%, #99CCFF 20%, #99CCFF 40%, #FFFFFF 40%, #FFFFFF 60%, #99CCFF 60%, #99CCFF 80%, #FFFFFF 80%)" {{{#666666 '''아르헨티나 선발명단'''[br][[파일:아르헨티나 국기.svg|width=30]]}}}}}} || ||<-30> GK[br]후안 보타소 || ||<-15> FB[br]호세 델라토레 ||<-15> FB[br][[페르난도 파테르노스테르]] || ||<-10> HB[br]후안 에바리스토 ||<-10> HB[br][[루이스 몬티]] ||<-10> HB[br]페드로 수아레스 || ||<-6> FW[br][[카를로스 페우셀레]] ||<-6> FW[br][[프란시스코 바라요]] ||<-6> FW[br][[기예르모 스타빌레]] ||<-6> FW[br]'''[[마누엘 페레이라]]''' ||<-6> FW[br]마리오 에바리스토 || ||<-30> VS || ||<-6> FW[br]빅토리아노 이리아르테 ||<-6> FW[br][[페드로 세아]] ||<-6> FW[br][[엑토르 카스트로]] ||<-6> FW[br][[엑토르 스카로네]] ||<-6> FW[br]파블로 도라도 || ||<-10> HB[br][[알바로 헤스티도]] ||<-10> HB[br][[로렌소 페르난데스]] ||<-10> HB[br][[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|호세 안드라데]] || ||<-15> FB[br][[에르네스토 마스체로니]] ||<-15> FB[br]'''[[호세 나사치]]''' || ||<-30> GK[br]엔리케 바예스테로스 || ||<-30> {{{#000000 '''우루과이 선발명단'''[br][[파일:우루과이 국기.svg|width=30]] }}} || [[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|우루과이]]와 [[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|아르헨티나]]는 [[남미]]의 대표적인 축구 [[라이벌]]이다. 1902년에 첫 시합을 한 이후로 2011년까지 붙은 횟수만 해도 피파 공식기록으로 180회나 되고 심지어 같은 날에 2번 시합을 한 적도 있을 정도다. 같은 날 2번 시합의 경우는 아침 8시에 기상해서 아침 9시에 아침밥을 먹은 후 아침 10시에 그라운드에 나와서 낮 12시까지 1경기를 뛴 후 점심밥을 먹고 나서 오후 2시에 그라운드에 다시 나타나서 오후 4시까지 2경기를 뛴 꼴이다.[*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기록인지 예를 들어본다면 지금까지 한 [[한일전]]의 횟수가 2011년까지 67회다. 그러니까 얘들은 한일전 비슷한 짓을 3배 가까이 한 거다. 물론 얘들 쪽이 시간 측면에서 2배 정도 길기는 하지만..] 이 결승전이 두 팀의 102번째 만남이었다. ~~무슨 [[한일 베이스볼 클래식]]도 아니고.. 30년도 안돼서 100번을 넘게 싸우나~~ [[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|센테나리오 경기장]]에 9만 3천명이 들어왔는데 [[아르헨티나]]에서만 만 명이 넘는 사람이 원정 응원을 왔고 경기 시작 시간이 오후 2시인데 정오도 안 되어서 경기장이 만원이 되었다. 아르헨티나가 우루과이와 가까운 이웃나라라서 가능했던 일. 그리고 축구 열기가 광적인 [[남미]]의 대표적 라이벌전답게 [[무기]]도 참 많이 발견되어서[* 관중들이 입장하기에 앞서서 몸수색을 실시했는데 [[권총]]이 수십 자루가 발견되었다.] 주심으로 내정된 랑제뉘는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면 심판 못 보겠다고 떼를 썼다.[* 이것은 어린애같은 투정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당연한 몸부림이다.] 그래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[[몬테비데오]] 항 인근에 랑제뉘를 위한 보트까지 정박시켜놓았다. 심판을 겨우 달래 놓았더니 이번에는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서로 자기네 공을 써야 한다고 싸우고 있었다.[* 공인구가 없었기 때문에 일어났던 해프닝이다] 결국 전반에는 [[아르헨티나]], 후반에는 [[우루과이]]의 공을 쓰는 것으로 싸움을 일단락지었다. ||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Balls_from_the_1930_World_Cup_final.jpg|width=100%]] || || 소동의 중심이었던 결승전 당시 시합구. 좌측이 아르헨티나제, 우측이 우루과이제 공이다. || 이런 소동들 때문에 예정보다 경기 시간이 한 시간 반 늦어져 15시 30분에 시작되었다. || [[파일:external/www.argentinaindependent.com/UruguayVsArgentina1930.jpg|width=100%]] || || 아르헨티나 [[주장]] [[마누엘 페레이라]](왼쪽)와 우루과이의 주장인 [[호세 나사치]](오른쪽)가 경기장에 들어오고 있다. 참고로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Uruguay_national_football_team|1900년대 초반부터 이 시기까지는 가끔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가 서로 상대방의 유니폼을 사용하기도 했다.]][* 특히 1900년부터 1910년까지 우루과이가 사용한 공식 유니폼의 디자인은 영락없는 현재의 아르헨티나의 유니폼이다.] 그러다가 이 시기 이후로 아르헨티나는 줄무늬, 우루과이는 민무늬로 고정되었다. || 그리고 라이벌전답게 격렬한 경기가 진행되었고 마침내 우루과이의 파블로 도라도가 전반 12분에 선제골을 기록하였다. 하지만 아르헨티나도 만만치가 않아서 [[카를로스 페우셀레|페우셀레]]와 '신데렐라' [[기예르모 스타빌레|스타빌레]]가 각각 한 골씩을 기록하여 전반은 2대1로 아르헨티나가 리드한 채 끝났다. 여기에서 우루과이의 주장 [[호세 나사치]]는 스타빌레의 역전골이 [[오프사이드]]였다고 강력히 주장했지만.. 씹혔다. 이 경기에서 누구보다 결의를 다지고 있었던 선수는 아르헨티나의 [[루이스 몬티]]였다. 2년 전이던 [[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|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]] 결승전에서 우루과이와 재경기까지 치렀다가 결국 패배한 아픔이 있었기 때문이었다. 그래서 평소보다 더욱 열심히 플레이를 펼쳤다. 우루과이 팬들도 그걸 예상했었을까? 몬티는 [[우루과이]] 팬들에게 경기 전날 살해 협박을 받기도 했다. 후반전은 우루과이의 무대였다. [[페드로 세아|세아]], 이리아르테의 연속골이 터지면서 순식간에 경기를 뒤집었다. 그리고 마지막은 [[외팔이]] 공격수 [[엑토르 카스트로]]가 장식했다. 후반 44분, 승부에 쐐기를 박는 헤딩골을 넣은 것이다. || [[파일:external/3.bp.blogspot.com/Hector+Castro+1930+Final.jpg|width=100%]] || || 카스트로의 쐐기골. '''우루과이가 FIFA 월드컵 최초의 챔피언이 되는 순간이다.''' || 그들은 특별히 제작된 [[FIFA 월드컵 트로피|우승컵-쥘리메 컵]]을 처음으로 수여받는 영광을 누렸다. 그리고 올림픽에 이어 월드컵까지 제패하면서 세계 최강의 축구팀은 [[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|자신들]]이라는 것을 다시 세계인들에게 각인시켜 주었다. [각주] [[분류: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